| | |||
|
| '맥베스' 소개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 가장 늦게 씌어진 작품이다. 1606년 덴마크 왕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궁중에서 공연하기 위해 제임스 1세(재위 1603~16625)의 명령에 의해서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옛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를 주인공으로, 스코틀랜드 역사의 한 부분을 다루게 된 것도 스코틀랜드 국왕을 겸하고 있던 제임스 1세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맥베스'의 작품상의 특징은 다른 4대 비극 작품과 비교해 길이가 짧고, 긴박감이 넘친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왕위 찬탈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전개되면서 길이 또한 짧기 때문에 극은 시종 긴박감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맥베스란 인물은 11세기 스코틀랜드에 실재했던 왕인데, 셰익스피어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전설을 가미하고, 또한 자유로운 상상의 힘을 빌어 새로운 비극 작품을 창조하였다.
'맥베스'는 흔히 운명의 비극, 또는 야심의 비극으로 불려진다. 이것은 맥베스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비극의 내용이 달리 이해됨을 의미한다. 마녀들의 말에 현혹되어 왕위 찬탈을 결심하고, 왕이 되려는 야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고 보면 '맥베스'는 야심의 비극이다. 인간의 욕망, 그것도 그릇된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야심이 낳은 비극의 모습을 '맥베스'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베스에 의해 전개되는 비극에는 운명적인 모습이 또한 짙게 깔려 있다. 맥베스에게 던져지는 마녀의 예언은 그대로 운명의 굴레가 되어 맥베스에게 씌워진다. 한번 유혈극을 벌이게 되자 잇따라 제2, 제3의 유혈극을 벌이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게 되는 맥베스의 비극은 이른바 운명적인 비극, 즉 인과응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왕의 살해, 죄의식에 사로잡혀 광란하는 맥베스의 부인, 운명적인 파멸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대적함으로써 마침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맥베스의 모습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면 그려 낼 수 없는 비극의 장대함을 보여 준다. |
| 사라져라, 저주 받은 얼룩이여! 사라지라니까! 그 늙은이의 몸에 그렇게 많은 피가 고여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이손은 영영 깨끗해 질수 없단 말인가?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 구나. 오, 아라비아의 온갖 향수로도 이 작은 손을 행기롭게 하지 못할 거야. --- p.36 그 늙은이의 몸에 그렇게 많은 피가 고여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이 손은 영영 깨끗해질 수 없단 말인가?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오, 아라비아의 온갖 향수로도 이 작은 손을 향기롭게 하지 못할거야. --- 본문 중에서 갑자기 맥더프가 휘청거리며 왕의 침소에서 나왔습니다. "오,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소! 그가 외쳤습니다. 맥베스는 피범벅이 된 침소로 뛰어 들어갔고, 레녹스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혼자 남은 맥더프는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경종으르 울려라! 사람들을 깨워! 살인이다! 반역이다!" --- 본문 중에서 |
| 셰익스피어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1564년 4월 23일 런던 북동쪽의 한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 upon Avon)에서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와 메리 아덴(Mary Arden) 사이에서 장남이자 셋째 아이로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셰익스피어는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 중등학교)'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여기서 라틴어, 그리스어 기초를 배우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영국 역사에 대해서 읽고 배울 수 있었으며, 덕분에 영국 역사극과 로마의 영웅들을 소재로 한 비극을 쓸 수 있었다. 그는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한 후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고, 1585년에서 1592년까지 런던에서 배우, 작가로서 성공하기 시작, 1595년경, 런던 연극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20여 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하여 희곡 38편, 154편의 소네트, 2편의 이야기 시와 몇편의 다른 형식의 시를 썼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질투심에서 그의 학식이 낮음을 가지고, "라틴어는 조금밖에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모르는 촌놈이 극장가를 뒤흔든다"고 은근히 비꼬았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그들을 '대학 출신 재간꾼(University Wits)' 정도로 부르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대가(Master)'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적 정신에 대한 마땅한 예우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운 좋게도 풍부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 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장르별로 크게 희극(Comedies), 비극(Tragedies), 역사극(Histories)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작 연대는 대체로 4기로 나눈다. 1590년경 당시 유행하던 유혈 낭자한 통속 복수 비극의 특성이 있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Titus Andronicus)>를 시작으로 한 1기(1590∼1592)는 습작기였다. <실수 연발(The Comedy of Errors)> 같은 소극(farce),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 헨리 7세가 튜더 왕가를 이루면서 장미전쟁을 종식하기 직전의 역사를 다룬 역사극 3부작을 쓰기도 했다.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을 정도로 영국의 큰 보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리어 왕』,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으로 세계 최고의 극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주로 짐작이나 추측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근 그의 실존 여부의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
<출처 : 맥베스 Macbeth, William Shakespeare / 김재남 역>
<대사, 저자 출처 : 네이버 책>
댓글 없음:
댓글 쓰기